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즈보니미르 보반 (문단 편집) === [[GNK 디나모 자그레브]] === 1985년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여 6시즌을 보내며 109경기 45골을 기록했다. 단순계산으로 따져도 대략 고등학생 때 이미 프로데뷔를 한 셈이고, 스탯 또한 리그를 씹어먹는 수준이었으며, 당시 전 유럽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파일:attachment/boban_1.jpg]] 보반이 일약 범국민적 스타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1990년 5월 13일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영문명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더비 매치]]였다. 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에 위치한 [[GNK 디나모 자그레브]]와 유고연방의 수도이자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있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간의 더비 매치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자연히 유고 연방의 분열 위기인 정치적 상황과 연결이 되어 있었으며, 당시 유고연방에서 발언권이 가장 셌던 세르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중심이 된 세르비아계와 유고연방 제2의 민족인 크로아티아간의 알력이 겹쳐서 분위기가 이미 심상치 않았던 상황. 디나모 자그레브의 주장인 보반 역시 이 경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크로아티아의 첫 자유 총선거가 진행된 지[* 1차 선거는 4월 22일 시작, 2차 선거는 5월 6일 시작.]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미 경기 전부터 헬게이트가 열려있던 상황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Dinamo_Zagreb%E2%80%93Red_Star_Belgrade_riot|위키에 단독 문서로 등재되어 있는 '디나모 자그레브 vs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시위]] 내용에 따르면 이미 개막 전부터 원정온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서포터는 세르비아 극우 민병대장인 '아르칸' [[젤리코 라즈나토비치]]가 지위하는 사실상의 민병대로, 이미 경기 전부터 디나모 자그레브의 홈팬들과 시가지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등 엉망진창이었고 사실상 준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시작된 후에도 분위기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리고 경기가 격화되자 이미 경기내용은 안중에도 없고 경기를 관전하러 왔다 흥분한 아르칸의 친위대는 디나모 자그레브의 홈팬들을 향해 돌 투척, 경기장 기물파손, 흉기를 이용한 위협 등을 일삼은데다 분리에 반대하는 플랜카드 등을 부착하며 난동을 부렸다. 이 당시는 홈,원정 서포터즈간 분할 입장도 되지 않아 순식간에 양측이 엉켰고 바로 난투극과 집단폭력사태가 발발했다. 참지 못한 디나모 자그레브의 팬들도 역시 반격을 시도했는데, 이 때 유고 연방 경찰은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서 열렸음에도 일방적으로 디나모 자그레브의 팬들을 상대로 강제진압을 시작하였다.[* 이는, 당시 유고 연방 경찰의 주요 보직과 병력이 세르비아계 중심이었고, 홈팀이 자그레브인 만큼 어느정도는 원정팀의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크로아티아계를 배제했다.] ~~가재는 게편?~~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하여 물대포 등의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진압하기 시작한다. 이미 경기는 중단되었고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선수들은 모두 라커룸으로 피신하였지만 디나모 자그레브의 선수들 중 주장 보반을 비롯한 몇몇은 경기장에 남아 있었다. 이미 난투는 잔디 위에서 벌어졌고, 그곳에서 홈팬들이 유고 연방 경찰들에 강제진압을 당하는 장면을 보다못한 보반은 경찰을 향해 플라잉 니킥을 꽂았다. 이른바 '독립을 불러일으킨 발차기.' 이미 첫 자유 총선거에서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를 주창한 [[프라뇨 투지만]]이 창당한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이 제1당으로 등극해 투지만이 크로아티아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크로아티아의 유고 연방 탈퇴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때의 축구장 시위는 마치 크로아티아의 독립 열기를 차단하려는 유고 연방의 압제처럼 보이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가 어쨌든 이로 인해 보반은 유고 축구협회로부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를 포함한 6개월 출장정지의 중징계와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었고, 공무집행방해로 검찰에 기소가 되기도 했다.[* 몇 년 후 취하되긴 했다. 그에게 맞은 경찰은 보스니아계 무슬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반은 이날의 행동에 대해 "내가 (내려가지 않고) 경기장에 남아 있을 때 공인으로써 내 삶과 커리어 그리고 모든 것을 던질 각오를 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내가 크로아티아인이라서다."[* 영어로 번역된 당시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Here I was, a public face prepared to risk his life, career, and everything that fame could have brought, all because of one ideal, one cause; the Croatian cause.]라고 자신의 행동에 한 점의 후회도 없음을 밝혔다. 크로아티아계 최고의 슈퍼스타인 보반의 이 행동과 인터뷰는 크로아티아계에 영웅적인 결단으로 찬사받았다. 이 사건은 크로아티아의 반 유고연방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결과가 되었고 이는 1년 후 [[유고슬라비아 전쟁|크로아티아의 독립전쟁]]으로 확산되기 이른다. 2011년 CNN은 [[http://edition.cnn.com/2011/SPORT/football/01/05/iraq.asia.six.games/|"세상을 바꾼 5경기"에 이 경기를 꼽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